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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 정보

몽골의 고려 침입 배경과 고려의 대응 전략

by 도비감자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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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 몽골은 칭기즈 칸을 중심으로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며 유라시아 대륙 곳곳을 정복하고 있었다. 고려 또한 몽골의 관심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몽골의 고려 침입"이 시작되었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주요 배경은 다음과 같다.

  • 거란(요)의 잔존 세력 소탕 과정에서 고려와의 마찰 발생
  • 몽골과 금(金)나라 사이의 전쟁 중 고려의 입장 모호
  • 몽골의 조공 요구 거부 및 고려의 자주적 외교 노선
  • 몽골이 동아시아 해안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

특히, 1216년 고려로 침입한 "거란 유민(삼별초와 전투)" 사건 이후, 고려는 몽골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몽골은 고려가 자신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결정하였다.

몽골은 고려를 자신들의 지배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침공을 시작했다.

몽골의 고려 침입 배경과 고려의 대응 전략
몽골의 고려 침입 배경과 고려의 대응 전략

1차 침입 (1231년)

몽골은 1231년 "살리타이 장군"을 보내 고려를 침공했다. 몽골군은 고려 북부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며 개경까지 진격했다.

고려 조정은 몽골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강화 교섭"을 시도하였고, 일부 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몽골군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임시적으로 협상했다.

그러나 몽골은 고려가 완전히 복속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후 다시 침공을 감행했다.

2차 침입과 강화도 천도 (1232년)

몽골은 고려 조정이 자신들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자, 1232년 다시 침공했다. 이에 고려 조정은 개경을 포기하고 "강화도로 천도"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강화도 천도의 주요 목적은 다음과 같다.

  • 몽골 기병의 기동력을 무력화 (해상 방어 중심 체계 구축)
  • 고려 왕실과 조정을 안전하게 보호
  • 장기적인 항전 전략을 통해 몽골을 지치게 만듦

고려군은 강화도에서 저항하며 몽골과의 협상을 계속 시도했으나, 몽골은 고려가 자신들의 지배에 완전히 순응할 때까지 침공을 멈추지 않았다.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는 몽골과 장기적인 전쟁을 벌이며 자주성을 유지하려 했다.

몽골의 반복적인 침입 (1235~1259년)

몽골은 고려의 저항이 계속되자 1235년부터 본격적인 "장기 침공"을 감행했다. 고려의 주요 도시와 농촌을 공격하며 전쟁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 정권(최우, 최항)"은 강화도에서 저항을 이어가며 고려의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다.

  • 몽골군은 고려의 주요 지역을 초토화하는 전술을 사용
  • 고려는 수성전과 해안 방어 전략을 통해 대응
  • 몽골과의 교섭을 지속하며 전쟁 장기화

1258년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고려는 몽골과의 강화를 모색했고, 결국 1259년 고려는 몽골과의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몽골의 침입은 고려에 큰 피해를 남겼지만, 고려는 강화도에서의 장기 항전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려의 대응 전략

강화도 천도를 통한 장기 항전

고려는 몽골의 기병 전술을 무력화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고 해양 방어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몽골군이 쉽게 고려 조정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만든 중요한 전략이었다.

강화도 천도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 몽골군의 기동력 약화
  • 왕실과 조정의 안전 확보
  • 고려 내부 저항 세력의 결집

강화도 천도는 몽골의 침공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고려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한 전략이었다.

해상 방어와 지방 저항

고려는 해상 방어를 강화하며 몽골군이 고려 전역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저항했다. 또한, 지방에서는 의병과 승려들이 몽골군에 맞서 싸우며 강한 저항을 이어갔다.

  • 삼별초 군대의 항전 (몽골에 끝까지 저항)
  • 지방 의병 세력의 성장
  • 승려 중심의 저항 (김윤후의 살리타이 장군 격퇴)

특히, 김윤후는 "처인성 전투(1232년)"에서 몽골군의 최고 지휘관 살리타이를 사살하며 고려의 저항 정신을 보여주었다.

고려는 해상 방어와 지방 저항을 통해 몽골군의 완전한 지배를 막으며 독립을 지켜냈다.

몽골과의 외교 교섭

고려는 군사적인 저항뿐만 아니라 몽골과의 외교 교섭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결국 1259년, 고려는 몽골과 평화 협정을 맺고, 원나라(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 고려 왕족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 (왕실 보호 전략)
  • 몽골에 일정한 조공을 바치며 내부 자치 유지
  • 원나라의 군사적 개입 최소화

이러한 외교적 타협을 통해 고려는 완전한 멸망을 피하고 일정한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려는 몽골과의 외교 교섭을 통해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원나라의 직접 지배를 막았다.

결론

몽골의 고려 침입은 고려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지만, 고려는 강화도 천도와 장기 항전 전략을 통해 독립을 유지했다.

지방의 저항과 외교 교섭을 병행하며 고려는 완전한 정복을 피할 수 있었고, 결국 원나라의 간섭 속에서도 고려의 왕조를 지속할 수 있었다.

몽골의 침략은 고려에 큰 피해를 남겼지만, 고려는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통해 자주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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