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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관련 정보

홍건적의 고려 침입과 고려의 대응 방법

by 도비감자 2025. 2. 28.

14세기 중반, 원나라의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중국에서는 반란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홍건적(紅巾賊)"은 원나라에 대항하여 일어난 대표적인 농민 반란 세력이었다.

이들은 원나라 정부의 탄압을 피해 세력을 확장하며, 점차 중국을 넘어 주변 국가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려도 이러한 홍건적의 침입 대상이 되었으며, 1359년과 1361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침입을 받았다.

홍건적의 고려 침입은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수도 개경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로 발전했다.

홍건적의 고려 침입과 고려의 대응 방법
홍건적의 고려 침입과 고려의 대응 방법

홍건적의 고려 침입 과정

1차 침입(1359년)

1359년, 홍건적의 일부 세력이 "산둥 반도"에서 배를 타고 황해도를 통해 고려로 침입했다. 이들은 압록강을 넘어 평안도 지역을 점령하고, 황해도까지 진출했다.

고려 조정은 급히 군대를 동원하여 대응했으며, "이방실"과 "안우" 등의 장수들이 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섰다.

고려군은 적극적인 방어전을 펼쳤고, 결국 홍건적을 격퇴하여 1차 침입을 막아낼 수 있었다.

2차 침입(1361년)

1차 침입에 실패한 홍건적은 1361년, 더욱 강력한 병력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침공했다. 이번에는 약 20만 명의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로 진격했으며, 개경까지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려 조정은 강력한 방어를 시도했으나, 홍건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어려웠다. 결국 홍건적은 개경을 점령하고, 수도를 점령한 상태에서 고려를 위협했다.

홍건적이 개경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공민왕과 조정은 부득이하게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려의 대응 방법

왕실과 조정의 피난

홍건적이 개경을 점령하자, 공민왕은 개경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왕과 조정은 충청도 "안동"으로 이동하여 임시로 정권을 유지하며 반격을 준비했다.

왕실이 피난을 떠났음에도 고려는 홍건적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으며, 전국적으로 반격 작전을 펼쳤다.

고려군의 반격 작전

고려군은 홍건적을 몰아내기 위해 여러 장수들을 중심으로 반격 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최영", "이성계", "정세운" 등의 장수들이 활약하며 홍건적을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려군의 반격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각 지역에서 홍건적을 견제하며 보급로 차단
  • 정세운, 안우 등의 장수가 개경 탈환 작전 수행
  • 최영과 이성계의 협력으로 홍건적을 완전히 몰아냄

1362년, 고려군은 개경 탈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홍건적을 고려 땅에서 완전히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고려군은 철저한 반격 작전을 통해 홍건적을 무찌르고 수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홍건적 침입 이후 고려의 변화

국방 강화와 군제 개편

홍건적의 침입은 고려의 국방 체계가 허술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고려는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 국경 지역의 방어 체계 강화
  • 지방 군대 조직 개편
  • 유능한 장수들의 등용 확대

특히, 최영과 이성계 같은 신진 무장들이 활약하면서 고려의 군사적 역량이 점점 강화되었다.

홍건적 침입 이후 고려는 국방력을 강화하며, 외세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공민왕의 개혁 정책 추진

홍건적을 물리친 후, 공민왕은 고려의 정치 개혁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권문세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신진사대부들을 등용하며 국가 개혁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개혁 정책은 다음과 같다.

  • 친원 세력 숙청
  • 신진사대부 등용
  • 전제 개혁 추진

이러한 개혁은 고려 후기에 나타나는 정치적 변화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결론

홍건적의 고려 침입은 고려 역사에서 가장 큰 외적의 침략 중 하나였다. 개경까지 점령당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고려군의 강력한 반격과 왕실의 피난 전략을 통해 결국 홍건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후 고려는 국방을 강화하고, 공민왕을 중심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다.

홍건적의 침입은 고려가 외적의 위협 속에서도 강한 대응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결국, 고려는 이 침략을 계기로 더욱 강한 군사력과 정치 개혁을 추진하면서 조선 건국 이전까지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